제목: 쯔빳 쯔빳
매체 : 매일경제
게시일자 : 2012.1.2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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`쯔빳 쯔빳(cepat cepat)`은 `빨리 빨리`라는 뜻의 인도네시아 말이다.
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 도착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기도 하다. 중국어 `콰이 콰이`, 아랍어 `얄라 얄라`도 같은 의미인데 우리말의 `빨리 빨리`와 그 어감이 참으로 닮았다.
외국여행 중에 들른 현지 식당에서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는 `빨리 빨리?` 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웃으며 되물어보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. `빨리 빨리`라는 한국말이 어느새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말이 된 것이다. 물론 캔두(can do) 정신과 함께 `빨리 빨리` 문화가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평가도 있긴 하다. 그렇지만 늘 조급하게 서두르기만 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.
우리처럼 외국 생활이 잦은 사람들은 오랜만의 서울 생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. 우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황망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며 `아, 돌아왔구나`를 실감하게 된다. 그리고 나면 눈뜨고 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는 생활이 시작된다. 버스, 지하철, 택시 어디서든 다들 분주히 움직이고 그 안은 라디오 방송이나 나누는 대화에 귀가 쉴 틈이 없다. 그리고 또 한 가지, 넘어지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손잡이를 꼭 잡아야 된다.
얼마 전 신혼여행객들도 즐겨 찾는 `신들의 섬` 발리에서 며칠을 보냈다. 평온하게 펼쳐진 바다, 푸른 산과 야자수의 정취, 나지막한 건물들과 곳곳의 크고 작은 힌두 사원들, 살짝 미소 짓는 발리 여인들…. 그 어느 것도 높지 않고, 빠르지 않고, 화려하지 않고, 시끄럽지 않다. 그 속에 있다 보면 잔잔한 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.
올해 대사관 직원들에게 `선진국 외교관`이란 화두를 던졌다. 선진국 외교관다운 언행과 기품을 갖추자는 것이다.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하면서도, 서두르지 않는 `느림`의 미학, 좀 쉬었다 갈 수 있는 `멈춤`의 미학, 빡빡하지 않는 `여백`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.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말이다. 올해는 빨리 빨리, 콰이 콰이, 얄라 얄라, 쯔빳 쯔빳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여유를 갖고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.
[김영선 주인도네시아 대사]